박사가 사랑한 수식

2008. 12. 7. 11:04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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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은 지 몇 개월이 지나서인지 기억을 가물거리지만 올해 읽었던 책 중에 나에게서 수위를 달리는 책이다.

일본 작가 오가와 요코의 2003년작 소설로 2004년 요미우리 소설상과 서점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서점대상은 일본의 서점 종사원들이 기존의 문학상이 갖는 폐쇄성을 탈피하고자 대규모 감정단을 구성해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을 선정하는 소위 '현장의 문학상'이다.

이 소설은 80분짜리 기억용량을 가진 박사와 파출부와 그녀의 아들과 숨겨진 박사의 사랑이 주된 스토리를 이어간다.

물론 박사의 사랑에 대한 것은 조금 밖에 나오지 않지만, 내용상으로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야기는 교통사고로 인해 80분짜리 단기 기억상실에 걸린 박사의 집에서 파출부일을 하게 되는 화자에서부터 시작된다.

평생을 연구만 하던 박사의 사교는 숫자를 통해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 책을 읽으면서도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박사가 말하는 우애수를 통해 사람간에도 우애가 생기는 듯한 느낌(우애수란 284와 220처럼 약수의 합이 서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이 든다.

여기에 등장하는 수학적인 것들은 모두 사람의 심리현상과 닮아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인 오일러 공식은 "e^(πi) + 1 = 0" 인데, e는 자연로그이고 π는 원주율, i는 허수이다.

뭐 공대계열분들은 저 공식을 잘 알겠지만, 나와 같이 문과생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의 화자 또한 모르기는 마찬가지이다.

소설 속의 화자는 오일러 공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하늘에서 π가 e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오일러의 공식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유성의 빛이었다. 어둠의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이었다. 거기에 담긴 아름다움에 감동하면서 ....."

아마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줄기를 위의 표현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하다.

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인 허수는 참 신비롭다. 허수의 제곱이 -1 이다. 허 이런 그럼 존재할 수 없는 수잖아!! 라고 말들을 하겠지만 그래서 만든 것이 허수 i 란다.

어쩌면 세상에서 허수란 사랑일 수도 있고, 희망일 수도 있고, 자신이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영화는 비추이다. 책이 훨~~씬 낫다. 뭐 굳이 영화를 보고 싶다면 책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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